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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LAOS) -그곳에서 어제의 우리를 만나다
'욕심 버려라'-'마음 비우라'-무념의 목탁소리
국제신문

글·사진=염창현 기자 haorem@kookje.co.kr

2007-11-15 19:46

     
               라오스(LAOS)- 그곳에서 어제의 우리를 만나다
   
불교국가인 라오스에는 곳곳에 불교의 흔적이 남아 있다. 수천개의 불상이 모셔져 있는 팍우동굴에서 바라본 메콩강.


남국의 먼동이 틀 무렵. 새벽길을 달린다. 사위는 조용했고 공기는 상큼하다. 이따금 트럭 몇 대와 오토바이를 개조한 차량 몇 대가 지나갈 뿐. 왕복 2차선의 좁은 도로는 고즈넉하다. 이방인을 맞는 것은 막 잠에서 깨어난 주민들이 새벽을 여는 소리. 마을 곳곳에 자리잡은 사원들. 그리고 줄지어 거리로 나온 개와 병아리를 거느린 어미 닭 무리. 어슬렁거리며 길을 걷는 소떼. 그런데 신기하다. 개는 낯선 이를 봐도 물끄러미 바라볼 뿐 짖지 않는다. 닭들은 무섭지도 않은지 개 옆에서 천연덕스럽게 모이를 찾고 있다. 소떼도 사람을 피하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짐승도 자연을 닮아가나 보다.

뛰는 사람을 좀처럼 보지 못했다는 듯 신기하게 쳐다보는 시선이 부담스러워 귀동냥으로 배운 한마디를 건넨다. "싸바이디(안녕하세요)." 굳었던 표정이 환한 웃음으로 바뀌며 금방 대답이 돌아온다. "싸바이디." 갑자기 부끄러워진다. 모르는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고 받아 본 적이 언제였던가. 출퇴근길 승강기 안에서 사람을 만나고서는 어색한 침묵 속에 딴청을 피우기 일쑤 아니었던가. 내가 던진 인사 한마디가 해맑은 웃음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왜 여태 몰랐을까.

그랬다. 라오스에는 우리가 오래 전에 잃어 버렸던 것들이 남아 있었다. 풍요롭지는 않았지만 마음만은 편했던 시절. 가진 것이 없기에 베푸는 것이 힘들지 않았던 때. 조그마한 기쁨에 모두가 행복해 했던 기억. 개울가에서 멱감던 소녀들. 방문객이 준 과자 몇 개를 옷가슴에 싸안고 가족들과 나누기 위해 부리나케 뛰어가던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 군침이 도는 장터 좌판의 국수 한 그릇. 모두가 이제는 가슴 속에서 아득히 그리워만 하는 옛 추억들. 그래서 누군가는 라오스를 찾아가는 길을 일컬어 '타임머신 여행'이라 불렀으리라.

라오스에 머물렀던 6박7일의 짧은 여정. 주저하지 않고 감히 이렇게 말하는 것을 양해하시길. 라오스 여행은 그 어느 때보다 편안했다고. 돌아보면 꿈만 같던 나날들이었다고.


   
몽족의 야시장
나눔의 미학 루앙프라방

라오스의 북부 도시인 루앙프라방. 라오스 최초의 통일왕국인 란쌍의 수도였던 곳. 1995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문화유산도시. 이층 이상의 건물을 지을 수 없도록 규정된 우리나라의 경주와 같은 역사도시. 이곳의 시작은 승려들의 딱밧(탁발)으로부터 시작된다.

어둠이 걷히고 먼동이 틀 무렵.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승려들이 옆구리에 공양그릇 하나씩을 낀 채 맨발로 발걸음을 옮긴다. 한 쪽 어깨가 훤히 보이는 주황색 가사에 노란색 허리띠. 줄을 지어 이동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주민들은 저마다 집에서 지은 찹쌀밥을 바구니에 담고서는 엄지손가락 크기만큼 떼어내 승려들의 그릇에 담는다. 행렬은 서열 순이다. 맨 앞에 큰 스님이 서고 뒤는 학승들이 따른다. 불교국가인 라오스에서는 많은 청소년들이 절에서 수행생활을 한다. 이들은 20세가 돼야 정식 스님이 된다. 공양을 받은 스님들도 어려운 이웃을 외면하지 않는다. 스님들은 자신들이 받은 음식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나눠준다. 그러고도 남은 음식은 절로 돌아가 모두가 나눈다.

딱밧은 라오스 어디에서나 매일 아침 동 틀 즈음 행해진다. 그러나 루앙프라방에서처럼 대규모 행렬은 쉽게 보기 힘들다. 40여 개의 사원이 있는 이곳에서의 딱밧은 이제 외국인의 눈을 사로잡는 라오스 제일의 볼거리로 자리매김했다.

5만 명이 살고 있는 루앙프라방은 라오스 최대의 관광도시다. 루앙프라방에서는 어디에서건 푸씨산을 볼 수 있다. 이 산에는 모두 328개의 계단이 만들어져 있으며 꼭대기에는 쫌씨라는 황금색의 탑이 서 있다. 1804년 세워진 이 탑은 높이가 28m로 매년 4월 15일 열리는 신년행사인 '삐 마이' 행렬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이곳의 꼭대기에서보는 일출과 일몰은 가히 압권이다.

   
왓탓루앙
루앙프라방에서 또 하나 유명한 곳은 몽족의 야시장이다. 매일 오후 5시부터 밤10시까지 형성되는 시장에는 몽족들이 직접 짠 직조품과 실크 스커프, 퀼트 십자수, 골동품 등이 나온다. 값은 비싼 것의 경우 미화로 100달러가 넘는 것도 있으나 대부분 1~2달러에 거래된다. 가격에 비해 정성이 아주 많이 담겨있어 놀랄 지경이다.

란쌍왕국의 임금들이 사용했던 왕궁박물관도 볼 만하다. 1904년부터 20년에 걸쳐 만들어진 이 왕궁은 1975년 라오스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하면서 폐지됐다. 왕의 접견실, 왕좌, 왕과 왕비의 침실, 도서관, 응접실, 왕실 음악 전시품, 왕실 초상화, 외교사절로부터 받은 기념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라오스 여성은 이 박물관에 들어갈 때 전통 치마를 입어야 한다. 치마가 없으면 박물관 입구에서 빌려 입어야 한다.

교외로 나간다면 팍오동굴과 쾅시폭포가 놓쳐서는 안될 비경이다. 메콩강을 1시간30분 가량 거슬러 올라간 곳에 있는 팍오동굴에는 갖가지 모양을 한 크고 작은 4000여 개의 불상이 자리하고 있다. 쾅시폭포는 루앙프라방에서 남서쪽으로 30㎞ 거리다. 주변에 자연림이 우거져 있는 데다 폭포가 여러 단으로 구성돼 있어 웅장하다.

동굴도시 방비엔

방비엔은 루앙프라방과 라오스의 수도인 비엔티안의 중간에 자리한 자그마한 도시. 석회암의 카르스트 지형으로 이뤄져 있어 60여 개의 동굴로도 유명하다. 특히 이곳은 중국의 계림과 닮았다고 해 '라오스의 소계림'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기도 하다.

   
라오스의 역사도시인 루앙프라방의 아침은 승려들의 탁발로 시작된다. 주민들은 각자 준비한 음식을 승려들에게 나눠주며 소원을 빌기도 한다.
방비엔에서 가장 관광객들의 흥미를 돋울만한 것은 수중에 있는 탐쌍동굴 탐험이다. 이 동굴은 입구에서부터 가슴 높이까지 물이 차 있어 걸어서는 들어갈 수 없다. 따라서 미리 연결된 줄을 잡은 채 튜브로 이동한다. 내부의 일부 구간은 걸어서 이동이 가능하나 천장이 낮아 거의 포복 수준으로 기어서 가야 한다. 가히 군대시절의 유격훈련을 연상케 한다. 10여 분 가량 탐험이 끝나면 웬만한 체력을 가진 사람도 기진맥진하기 마련. 그러나 걱정 마실길. 곧바로 쏭강이 바라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서 바베큐 등의 푸짐한 식사를 할 수 있다.

식사를 마쳤다면 이제는 카약투어를 즐길 차례. 2인 또는 3인이 한 조가 되어 카약을 타고 쏭강 하류로 내려간다. 짓궂은 가이드들이 수심이 얕은 곳을 골라 일부러 카약을 뒤집는 것도 색다른 재미. 처음엔 무서워하던 관광객들이 서너 번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다 보면 체면불구하고 상대방의 카약 뒤집기에 나서는 등 이른바 악에 받치게 된다. 카약투어 중도에 만나는 점프는 담력을 시험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 지상 10m 가량 높이에서 그네 등을 타고 강 중간에 뛰어 내린다. 구명조끼를 착용하는 데다 밑에는 안전요원들이 대기하고 있어 큰 위험은 없다.

방비엔에는 비교적 큰 규모의 몽족마을인 파타오빌리지가 있다. 몽족은 라오스의 소수 민족. 그들의 생활상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화려한 전통의상을 입은 여인들을 만나는 것은 운이 좋아야만 된다.

라오스 사람이 사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방비엔의 아침시장을 찾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의 재래시장을 연상하면 된다. 각종 과일에서부터 어류, 생필품 등 온갖 것이 갖춰져 있다. 방비엥 아침시장은 일명 '몬도가네 시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박쥐 청설모 조류 등 여러 가지 동물들이 거래되는 까닭이다. 시장기를 느낀다면 좌판에서 찹쌀 국수를 먹으면 제격이다. 면발이 졸깃하다. 하지만 자극성이 강한 향채를 넣기 때문에 비위가 약한 사람은 미리 넣지 말 것을 주문해야 한다.

관광도시인 까닭에 방비엔에서는 1달러 정도면 자전거를 빌려준다. 조금만 외곽으로 벗어나면 거의 차가 다니지 않아 자전거를 타기에도 그만이다. 호텔에 따라 자전거에 공기를 주입하는 기구가 갖춰져 있다. 이곳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디스코텍은 예전의 우리나라 콜라텍 수준. 그래도 오토바이를 탄 젊은이들이 끊임없이 몰려든다. 라오스에서 가장 유명한 맥주인 비어라오 한 병을 시켜도 푸대접을 받지는 않는다. 만약 일행 가운데 한국음악 CD를 가지고 있다면 디스크자키가 흔쾌히 틀어준다.

   
라오스의 심장 비엔티안

라오스의 수도는 '달의 도시' '백단향의 도시'라는 뜻을 가진 비엔티안. 전체 인구 600만 명 가운데 10분의 1인 60만 명이 산다. 루앙프라방이나 방비엔이 우리나라 1960~1970년대 모습이라면 비엔티안은 1980년대 수준이다.

비엔티안에서는 왓 탓루앙(탓루앙 사원)을 빼놓으면 안된다. 라오스에서 가장 신성하게 여겨지는 불교 유적으로 국가의 상징이다. 각종 화폐 등의 도안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부처님의 가슴뼈 사리가 안치돼 있다. 왓 호파깨우는 1565년에 세워진 것으로 에메랄드 부다를 모실 목적으로 건립됐다가 1936년 재건됐다. 1818년에 세워진 왓 씨싸껫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원이다. 그 이유가 서글프다. 19세기에 라오스는 샴(태국) 왕국의 공격을 받아 많은 유적이 불탄다. 이 때 샴 군대들이 주둔한 곳이 바로 왓 씨싸껫. 덕분에 이 사원은 화를 면했다. 내부에는 모두 1만136기의 부처가 모셔져 있다. 이중 회랑에 6840기, 본당에 2052기가 있다.

현대식 건물로는 시내 중심가에 있는 빠뚜싸이가 유명하다. 일명 개선문으로 1960년대에 세워졌다. 과거 라오스를 지배했던 프랑스의 개선문을 흉내냈다. 천장과 벽면에는 비쉬뉴 브라마 인드라 같은 힌두교 신들이 조각되어 있다. 교통이 편리해 가족단위나 연인들이 많이 찾는다.

부다 파크는 말 그대로 불상공원이다. 1950년대 루앙 분르아 쑤리랏 이라는 조각가가 힌두와 불교의 원리를 형상화해 조성했다. 라오스 전통 무용을 접하고 싶다면 옌 싸바이 쇼를 봐야 한다. 라오스 여러 민족의 전통춤과 노래, 악기 연주 등으로 짜여져 있다. 특히 관객석과 무대간에 거리가 없어 보다 친밀하게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게 장점이다. 마지막에는 무용수들이 관객들을 무대로 불러내 같이 춤추는 시간을 갖는다. 라오스 국립무용단원들이 매일 밤 1회 공연을 한다.


# 떠나기전에

- 밤 12시 전 술집 대부분 문닫아

라오스는 한반도의 1.1배 크기이나 인구는 600만 명에 불과하다. 1975년 사회주의 국가가 됐다. 화폐단위는 낍이다. 그러나 태국의 밧과 달러가 통용된다. 라오스의 시차는 우리나라보다 2시간 늦다. 우리나라 교민은 500여 명 가량으로 추산된다. 수도 비엔티안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이 몇군데 있다. 북한이 운영하는 음식점을 이용해도 된다. 사회주의체제인 까닭에 대부분의 주점은 밤 12시 전에 문을 닫는다. 하지만 이른바 뒷 배경이 있는 업소는 예외다. 라오스의 치안은 예상과는 달리 안전한 편이다. 우리나라에서 라오스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베트남이나 태국으로 가서 비행기를 갈아 타야 한다.

현지 여행사로는 부산 출신의 여성 김승현 씨가 라오스인 남편과 함께 운영하는 '폰트래블(www.laokim.com)'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부산에서는 명문여행사(www.m ts.co.kr·051-852-1231)가 다양한 라오스관광 상품을 준비해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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